하늘에서 시키는 일

전남 보성읍 관주산 정상(頂上)에서 선배(先輩) 한 분과 집으로 돌아오면서 밭 사이로 난 길을 걷고 있

는데 밭에는

아직 거두어가지 않은 콩대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형님! 저 밭의 주인은 굉장히 바쁠까요?”

 “그건 왜 묻는가?”

“지금 콩 같은 것은 수확할 시기가 한참 지난 것 같은데 아직 그대로 있어서요.”하자 손가락으로 밭에

 있는 콩대를 가르치며

“저것 말인가?” “예!” “그런데 저건 수확해 봐야 인건비(人件費)도 안 나오기 때문에 그대로 버려

둔 것 같은데!”

“정말 그럴까요? 제가 보기에 여기저기 콩이 달려있는 것이 많아 보이는데요.” “그건 자네 보기에 그

런 것이고

내가 보기에 쓸 만한 콩은 거의 안 보여!” “그러면 저런 것은 어떻게 처리하려고 저렇게 두었을까

요?” “그대로 놔뒀다 썩으면

트랙터로 로터리를 한 번치면 괜찮아!” “그러면 금년에 형님은 콩을 얼마나 수확하셨어요?” “우리

 집 콩? 아이고! 말도 말게!”

“왜요?” “원래 콩이란 저 밭에 있는 것처럼 순이 높이 자라면 안 되는 것이거든, 그리고 아담하게 자

라야 열매가 많이 달리는 것인데,

금년에 우리 콩은 어떻게 된 일인지 순만 계속 자라더니 나중에 하늘 쭈시게 생겼어!” “그러면 잎이나

 순이 너무 자라지 않도록

조금씩 잘라주면 되지 않을까요?” “잘라주기는 했지만 그래도 너무 자라버리니까 계속 자르기도 그렇

더라고,

어쨌든 이걸 수확해야 하는데 다른 때는 별로 높게 자라지 않기 때문에 그냥 뽑아내면 되는데 이게 너무

 자라다보니 그냥 뽑기도

낫으로 자르기도 정말 힘이 들더라고.” “그러면 그걸 벼처럼 세워놓고 수확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미국처럼 몇 백만 평짜리

거대한 토지(土地)에 재배했다면 기계(機械)로 수확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처럼 조그만 밭에 재배한 콩을

 기계 불러다 수확하면

배 보다 배꼽이 더 커질 수 있는데 그래!” “형님 말씀을 들어보니 정말 그러네요.” “어찌되었든 그

걸 뽑아다 우리 집 들어가는

길에 길게 늘어놓았거든.” “그러면 차들이 다니면서 다 갈아버렸을 것 같은데요.” “그런데 콩대를

 늘어놓은 게 아니고

무슨 덤불 걷어다 놓은 것처럼 길을 다 차지하고 있는데 우리 조카가 화물차를 가지고와서 ‘삼촌 고구

마 몇 박스 싣고 왔는데

여기 지나가도 될까요?’묻더라고, 그래서‘그래라!’했는데 승용차보다 더 높은 화물차가 우리 집 대문

 앞으로 다가오니

콩대들도 밀려서 대문 앞까지 왔다가 또 딸려 나가면서 엉망진창이 되 버리더라고.” “그러면 속이 상

하였겠는데요!”

“그런데 자네 형수는 또 그걸 작대기로 두들기면서 나보고 ‘함께 하자!’고 야단이더라고!” “그래서

 같이 하셨어요?”

“그래야지 어떻게 하겠는가? 밥을 편하게 얻어먹으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 “그러면 콩은 얼마나

나오던가요?”

“다른 때는 거의 서말 정도 나오는데 금년에는 플라스틱 바가지로 세 개 그러니까 서되 정도 나온 것

 같아!”

“그럼 종자는 값은 되었나요?” “종자 값 보다는 더 나왔지만 그래도 우리 쓸 정도는 나와야하는데 그

렇지 못하니

금년에 우리가 쓰려면 콩을 몇 말 더 구입해야 할 것 같아, 그리고 농부(農夫)들은 수확이 모두 끝나고

 농한기(農閑期)가

돌아오면 그동안 일 하느라 몸 여기저기 성한 곳이 없으니 병원(病院)에 가서 치료 받아야하는데 그러려

면 돈이 있어야 되는데

농작물이 흉작(凶作)이 되면 돈 나올 구멍이 없으니 걱정 아닌가?” “형님 말씀을 들어보니 정말 그러

네요.”

“그래서 어찌되었건

농사를 잘 지으려고 노력하지만 그것을 결정하는 건 하늘이니 어떻게 하겠는가? 하늘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지.”

사진은 제가 살고있는 전남 보성읍 관주산의 늦가을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