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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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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류상진 작성일20-01-18 15:55 조회1,70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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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하던 날

 

오늘은 24절기(節氣) 21번째이며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는 대설(大雪)인데 내리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지,

어젯밤 겨울이 찾아와 여기저기 마구 헤집고 돌아다니며 흰 눈 대신 하얀 서리만 잔뜩 뿌려놓고 사라졌

는데, 그걸 치워야할

 

하늘의 햇님은 짙은 구름 속에서 아직 나타나지도 않고, 집 주위의 새들만 이른 새벽부터 무엇이 그리

 좋은지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있었다. 오늘은 일 년에 한 번하는 김장 날이어서 아침 일찍 식사를 마치고 집 사람과 함께

 각종 양념 섞을 준비를 하였다.

 

그러니까 엊그제 집 사람이 아침 식사를 하면서이제 날씨도 추워지고 그러니 김장을 해야 할 것 같은

데 나 좀 도와줄 수 있겠어?”

하기에요즘 내가 특별히 할 일도 없으니 돕는 것은 당연한데 무엇을 어떻게 도와야할까?” “먼저 밭

에서 배추 캐오고,

 

무하고 당근 채 썰고, 그리고 절인 배추에 양념 비비면 되니까, 오늘은 우선 밭에서 배추부터 캐오면 되

겠네!”하여 집사람과 함께

밭으로 향하였는데 예년에 비해 금년에는 기상(氣象) 변화(變化)가 심했던 까닭에 배추가 그렇게 속이

 꽉 차지 않았는지

 

몇 폭은 아주 가볍게 느껴졌다. “올해도 김장해서 아들과 친정엄마에게 몇 포기 보내려면 작년 보다 적

게 하면 안 되니

40포기는 해야 되겠지?” “글쎄! 내가 무엇을 알아야 대답을 하지! 그냥 알아서 해!”하였더니 40포기

를 캐서 집으로 옮긴 다음,

 

칼로 배추 폭 가운데를 잘라 집사람에게 건네주면 그걸 잘 절게 지도록 소금을 뿌린 후 커다란 고무함지

(다라이는씻다!’라는

뜻의 일본 말이라고 합니다.)에 차곡차곡 쌓고 배추가 물에 떠오르지 않도록 무거운 돌로 잘 눌러 놓았

.

 

그리고 이튿날 소금에 절인 배추를 건져 깨끗이 씻은 다음 넓은 채반에 물이 잘 빠지도록 놓아두고 배추

와 함께 버무릴

양념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내일 힘들 텐데 처제를 오라고 하면 안 될까?” “요즘 동생이 인터

넷에 절인 배추 판매하느라

 

굉장히 바쁘다던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어서 오기가 힘들 것 같거든.” “절인배추 만들기가 그렇게 힘

 드는 작업인가?”

자기도 어제 해 봤으니 알겠지만 먼저 밭에서 배추 캐 와야지, 그리고 그걸 폭이 큰 것은 네 조각 작

은 것은 두 조각으로

 

자른 다음 소금물에 절개야지. 절 개진 배추는 깨끗이 씻어서 물기 빼야지, 물기 빠진 배추는 무게를 달

아서 박스에 담아야지,

박스에 담은 배추는 또 택배로 보내야지, 그게 일이 어디 한두 가지야?” “그게 모두 돈을 버는 일인데

 그런 수고도 없이

 

쉽게 벌수 있는 방법은 이 세상에는 없는 거야!”하면서 무와 당근을 채칼로 써는 동안 집 사람은 쪽파

와 갓을 잘게 썰고,

또 김치 소에 넣을 찹쌀 풀과 젓갈을 끓이는데 고소하고 맛있는 냄새가 진동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

음날 아침 집 사람과 함께

 

주방(廚房)에서 나일론 장판을 깔고 갖은 양념이 섞어진 소를 잘 절개 진 배추에 부비는 작업(作業)

 시작되었다.

간이 잘 맞는지 먼저 맛을 봐야지!” “내 입에는 너무 짜지도 싱겁지도 않고 마치 좋은데! 그리고 고

소한 맛도 있는 것 같고!”

 

내가 먹기에는 약간 싱거운 느낌도 있는데!” “싱거운 건 괜찮아! 애들에게 보낼 것은 싱거워야지 짜

면 애들이 어떻게 먹겠어?” 하며

쉬지 않고 열심히 담갔는데도 처음에는 간단할 것으로 생각되었던 김장하는 작업이 시간이 지난수록 다

리도 아프고, 팔도 아프고,

 

나중에는 허리가 끊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집사람을 바라보며지금까지 나와 함께 수십 년

을 같이 살면서

이렇게 힘든 작업을 아무 말 없이 그저 묵묵히 혼자서 해왔구나!’생각하니 그저 고맙고 감사하다는 생

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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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나태주 지음.

저녁에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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