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하는 사람들

우리민족의 대 명절 추석(秋夕)이 며칠 남지도 않았는데 어제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아직도 그칠 생각이 없는지 계속 추적추적 내리고 있는데,

어디선가“깍~깍~깍~깍”마치 까치가 내는 비슷한 소리가 들려왔다. ‘금년에는 가을장마 때문에 비가 자주 내리는 구나!

요즘 과일이나 곡식이 영글어 갈 때인데 이러면 전혀 도움이 안 되는데! 이 비가 지난여름 폭염(暴炎)이 쏟아질 때 내렸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 본다. 보성읍 주봉리 뒤쪽 관주산 등산로(登山路)에 막 들어섰는데 “어이~ 같이 가세!”하는 소리가 들려 뒤 돌아보았더니

선배 한분과 후배가 나를 부르며 빙긋이 웃고 있었다. “산(山)에 가시게요?” “집에 있어봐야 별로 할 일도 없는데 부지런히 산에라도 다녀야지

안 그런가?” “그럼 형님은 집에 계시면 형수님께서‘빨리 나가 돈 벌어오라!’고 쫓아내던가요?” “아니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은근히 눈치가 보여서 말이여! 흐! 흐! 흐!”하며 걷는데 길 아래쪽 누구네 산소(山所)에서 벌초(伐草)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형님 벌초는 다 하셨어요? 저기서 작업하는 것을 보니 좋아 보이네요!” “나는 작은 집 동생이 다 알아서 하니까 별로 신경을 안 써!”

“모두 몇 봉인데요?” “우리 조부모님과 우리 부모님 4봉인데 작은집 동생이 시골에 살면서 논이나 밭에 풀 베러 가면 그때마다 지나다니면서

한번 씩 깎아 버리니까 항시 깨끗하더라고.” “그러면 벌초 때문에 어려움은 없겠네요.” “그렇지!” “그러면 자네는 어떤가?”하고 후배에게 물었더니

“저는 선산(先山)이 저쪽 영암군에 있거든요. 그러다보니 옛날에는 신경을 많이 썼는데 요즘은 그냥 맡겨서 하니까 괜찮더라고요.”

“산소가 모두 몇 봉인데?” “7봉이거든요. 그런데 처음 저의 조부님 한 봉만 있을 때는 별로 신경도 안 썼는데 차츰 저의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도 돌아가시니 산소가 점점 많아 질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벌초를 하려면 미리 큰댁 형님과 전화해서 날짜를 잡고 예초기와 낫,

또 풀을 베어내면 긁어모을 수 있는 갈퀴 같은 것도 준비해서 아침 5시쯤 일어나 작은댁으로 가거든요. 그리고 거기서 아침밥을 먹고

산소에 가면 7시쯤 되는데 저하고 큰댁 작은 형님, 그리고 저의 작은 아버지께서 꼭 따라오시더라고요.” “왜 따라 오실까? 혹시 일하는 게

못 미더워 그러실까?” “‘둘이만 하문 쓴다냐? 느그는 조부님이제만 나는 우리 부모님인께 나도 가 봐야제!’하는 것이

아무래도 못 미더워하시는 것 같아요.” “그럼 일도 같이 하시는데?” “나이가 있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그냥 앉아만 있다 오시는 거지요.”

“그래도 어른들이 계시면 더 든든하지 않을까?” “아무래도 우리가 미처 모르고 있던 것도 가르쳐 주시니 그런 점에서는 좋은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처음에는 낫으로만 풀을 베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정말 힘이 들더라고요.” “그랬겠지!” “그러다 작은 형님이 어느 날 예초기를

빌려왔다고 하면서 그걸로 베는데 정말 빠르더라고요.” “아무래도 힘이 덜 들어도 덜 드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런데 남들이 기계로 일하는 것은 쉬워보여도 제가 직접 기계를 짊어지고 풀을 베려니 진동이 있으니까 떨려서 어깨가 내려앉은 것처럼

아프고 힘이 엄청 많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했는가?” “그래서 3년 전부터 벌초하는 사람에게 맡겨서 하고 있어요.”

“그러면 돈은 얼마씩이나 달라고 하던가?” “산소 한 봉에 5만원씩인데 7봉이니 모두 35만원이거든요. 그런데 작업하는 사람이 우리 집안사람이고 해서 5만원 깎아 30만원만 달라고 했다 네요.”

가을은 억새의 계절일까요? (2021년 10월 1일 경남 하동 형제봉 등산 중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