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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맛있었던 호박죽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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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류상진 작성일24-02-18 13:52 조회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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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맛있었던 호박죽 이야기

어제는 구름 속에서 무엇을 했는지 하루 종일 얼굴도 내밀지 않던 해님이 오늘은 무슨 맘을 먹었는지 이른 아침부터 따스한 햇살을

온 누리에 골고루 비추며 웃는 얼굴로 구름 속에서 나타나자, 까치들은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서 온 동네가 떠나갈 듯 쉬지 않고

 

‘깍! 깍!’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관주산에서 운동을 마치고 내려오면서 농로 길로 접어들었는데 길 아래쪽 밭에 지난

가을 수확해 가지 않은 누렇게 잘 익은 늙은 호박 몇 개가 엊그제 찾아온 강한 추위 때문에 얼었는지 약간 검게 변한 채 버려진

 

 

것처럼 보이자 같이 걷던 선배께서 “아이고! 저 아까운 호박을 왜 따가지 않고 버렸을까?” “혹시 호박이 덜 익어 따가지 않고

버렸을까요?” “저게 추위 때문에 얼어서 저렇게 보이지 만약 얼지 않았다면 굉장히 잘 익은 호박인데 아깝네!” 하며

 

자세히 살피기에 “왜 그렇게 들여다보세요?” “어차피 저건 꽁꽁 얼었기 때문에 주인도 따가지 않을 테니 나중에 우리 집사람과

같이 칼을 가지고 와서 씨라도 빼가려고 그러네.” “씨는 빼서 무엇하시게요?” “그걸 가져가면 우리 집사람이 깨끗이 씻어

 

햇볕에 말린 다음 껍질을 일일이 까서 모으더라고.” “호박씨는 까서 어디에 쓰려고요? 혹시 볶아서 간식용으로 드시려고요?”

“아니 그런 것은 아니고 그렇게 모은 씨에 해바라기, 땅콩, 아몬드 같은 견과류를 함께 섞어 볶은 다음 갖가지 양념을 넣어

 

반찬을 만들어 아들도 주고, 딸도 주고 또 조카들도 주고 하여튼 여럿이 나눠주면 다들‘맛있다.’며 좋아하더라고.”

“그런데 형님! 아들하고 딸에게 나눠주는 것은 알겠는데 조카들까지도 나눠주신다고요?” “글쎄 그렇다니까!”

 

 

“그런데 견과류 반찬을 받아먹는 사람이야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하면 되지만 그걸 만드는 사람은 보통 정성으로

만들기가 쉽지 않을 텐데 고생을 하시네요.” “그런데 지금은 세상이 변해 먹거리가 많기 때문에 저렇게 늙은 호박이 버려져 있지

 

옛날 내가 젊었을 때만 해도 밭에 저런 게 버려질 수가 없었는데 내가 호박죽에 대한 한가지 추억이 있는데 들어볼란가?”

“말씀해 보세요!” “지금부터 약 삼사십 년 전에는 가을에 농사일이 끝나면 할 일이 없어! 그러다 보면 산에 나무를 하러 다녔는데

 

나무도 날씨가 좋으면 다닐 수 있지만 눈이라도 많이 와서 쌓여있으면 갈 수가 없어, 그러면 사랑방에 모여 새끼를 꼬거나,

그렇지 않으면 가마니를 짜거나 하였는데, 그건 시골 마을에서나 하는 일이고 읍내(邑內)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으니까.

 

누구네 집에 모여 화투를 치거든. 그런데 그걸 치면서 내기를 하지 않으면 무슨 재미로 치겠는가? 무엇이든 따고 잃은

재미가 있어야 하는 법이지 안 그런가?” “그러면 내기 화투에서 진 사람은 손해를 많이 봤겠네요.” “그렇지! 그런데

 

어느 날 주머니에 있던 돈을 모두 날려버리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는데 배가 잔뜩 고픈 거야.”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어떻게 하겠는가? 주머니에 돈 한 푼 없는데! 막걸리 한 잔 사 먹을 수도 없으니 주머니에 손을 넣고 고개를 푹 숙이고 걸어오는데

 

그날따라 왜 그렇게 날씨마저 추웠는지 하여튼 그렇게 친구 집 앞을 지나가는데 친구가 불러 그래서 고개를 돌려보니

‘집에 조금 왔다 가라!’는 거야 그래서 못 이긴 척하고 들어갔더니 누렇게 잘 익은 늙은 호박으로 죽을 쑤었다는데

 

얼마나 달고 맛있던지 아직도 그 맛을 잊지 못하고 있거든! 그런데 그날 또 내가 좋아하는 막걸리까지 한 잔 대접받았으니

그날 기분은 하늘을 날아가는 것 같다고 할까? 하여튼 그날의 맛있는 기억은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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